정책과 동향
TPP 무산으로 RCEP에 주목하는 일본
작성자 : 이용우
2017-04-05 |
조회 : 1100
-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 속에 RCEP이 대안으로 부상
■ RCEP 17차 협상 폐막, 조속한 타결 노력하기로 합의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3일까지 일본 고베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협상이 개최됐다.
16개국에서 참가한 700여 명의 교섭관이 상품, 서비스, 투자, 지적재산권, 법률제도, 전자상거래, 원산지, 무역원활화 등 12개 분야에서 논의를 했다. 이번 협상에서 논의한 12개 분야 중 새롭게 합의에 이른 분야는 없었지만, 참가국들은 TPP 무산 등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 속에 조속한 타결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 했으며, 일본 외무성 이이다케이야(飯田圭哉) 심의관은 “착실한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RCEP은 ASEAN 10개국에 동북아 및 대양주 6개국이 참여하는 메가 FTA로써, 역내 인구가 세계 인구의 49%에 해당하는 35억 명, GDP는 전 세계의 약 31%인 22조 달러, 교역 총액 역시 전 세계의 약 29%인 9조 달러에 달하고 있다. 자유화 약속수준은 기존 ASEAN+1 이상으로, 참가국 간 무역투자 촉진에 더해 역내 서플라이 체인 확대에 기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베에서 개최된 RCEP 제17차 협상>
자료 : NHK방송 화면
■ TPP 무산으로 RCEP 주목하는 일본 정부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은 TPP 무산에 더해 일-EU EPA 협상 난항으로 RCEP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아베 총리는 3월 1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지적 재산권, 노동 등 분야에서 TPP처럼 높은 수준의 협상의 의의를 RCEP, FTAPP(아시아태평양 자유무역권) 참가 아시아 국가에 전파하고 싶다.”고 밝혀 RCEP 협상주도에 대한 의지를 피력했다. 일본은 2013년 일본재흥전략에서 2018년까지 교역액 중 FTA 체결국과 교역비율을 70%까지 높이겠다고 규정했으나 TPP 무산으로 목표달성에 타격이 있는 상황이다.
2014년 기준 한국 교역액 중 FTA 체결국과의 교역비율은 67.3%이다. 반면 일본은 TPP까지 포함시킬 경우 이 비율은 37.2%까지 상승하나 TPP 무산으로 22.3%에 그쳤다. 참고로 2016년 6월 기준, 일본은 20개국과 16개 EPA 협상을 체결, 발효된 상황이다.
<일본의 EPA 협상 추진 상황>
자료 : 2016년 통상백서
특히 일본 정부는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RCEP을 지렛대로 경제발전을 추구하기 위해 경제협력을 요구하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함으로써 협상타결을 이끈다는 계획이다. 세코우히로시게(世耕弘成) 경제산업 대신은 인재 육성과 인프라 정비 등 지원을 지금까지 보다 높은 수준으로 제공하겠다고 지난 2월 밝혔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일본정부는 개발도상국을 활용, 자유화 수준이 높은 무역 및 투자 규칙 제정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다.
■ 협상의 과제는? 높은 수준의 자유화 달성 가능 여부
RCEP의 자유화 수준은 ASEAN+1 FTA를 상당정도 개선하는 수준이나 협상 참여국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ASEAN+1 FTA 중 아세안-인도 FTA(AIFTA)의 자유화율은 70%대로 낮아 자유화율이 95%인 TPP에 비해서는 수준이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참가국 중 인도와 중국은 자유화에 소극적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특히 인도는 태국과 FTA 체결 이후 태국으로부터 수입이 급증해 FTA 자유화에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으며, RCEP 협상에서 예외품목을 늘려 자유화율을 낮추고 있다.
<ASEAN+1 FTA 자유화 수준(HS 코드 6자리 기준)>
(단위 : %)
주) CLMV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베트남 의미 자료 : 국제무역투자연구원
■ 일본 기업이 RCEP에 기대하는 사항
RCEP은 글로벌 생산거점인 중국, 동남아, 인도가 참여하여 생산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광역 FTA로, 일본기업의 서플라이 체인 구축을 위해 중요하다. 즉,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국내시장 축소에 대응하고 아시아 지역 성장을 활용하기 위해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지역과 효율적 국제 분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일례로 인도에서 건설기계를 제조·판매하는 일본기업 C사는 원활한 부자재 조달 면에서 RCEP을 기대하고 있다. 이 회사는 태국에서 제조된 부자재와 설비를 인도로 수입할 때 AIFTA를 활용하고 있지만, 일본제 부품 때문에 원산지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RCEP 체결 시 원산지 기준 충족이 기대되고, 또한 중국에서 조달한 부자재를 인도에서 제조한 후 아세안 시장에 판매하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JETRO에서 2015년에 아세안 진출기업 5545개사 등 RCEP협상 참여국가 진출기업 8,468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응답 기업 4117개사)에 따르면, RCEP 협상으로 기대되는 주요 사항은 통관 간소화 등이다. 가장 기대되는 사항은 통관관련 제도 및 수속의 간소화(응답률 39.8%)로, 특히 인도네시아(54.8%), 캄보디아(53.3%), 미얀마(48.3%)에서 기대하는 기업이 많았다. 그 뒤를 잇고 있는 사항은 관세번호 변경 기준과 부가가치 기준의 선택적 적용 등 이용하기 쉬운 원산지 규정을 채택했다. 일본 국제무역투자연구원에 따르면, ASEAN+1 FTA에서는 다양한 원산지 규정이 적용되고 있는데, 관세번호 변경기준과 부가가치 기준의 선택적 적용은 AFTA를 포함해 4개의 FTA에서 적용하고 있다.
한편 TPP의 경우 물품의 최종 생산자가 국내산이 아닌 협정 상대국 원재료를 사용했더라도 그 원재료를 국산 원재료로 간주, 특혜관세의 혜택을 부여하는 누적 원산지 규정을 적용한 점이 화제가 되었으며, 일본 내에서는 RCEP에서도 누적 원산지 규정 적용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있다.
■ 시사점
TPP 무산, 일-EU EPA 협상 난항이 더해져 메가 FTA 추진에 위기감을 느끼면서 일본도 RCEP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단순한 조기합의보다는 TPP에서 이룬 성과를 바탕으로 높은 자유화 수준 달성을 위해 협상을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협상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각국이 조속한 타결을 위해 협상을 최대한 가속화해야 한다는 시급성을 공유하는 상황이나 타결 시기는 불투명하다. 참여국 간 격차가 크고 자유화 수준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여 쟁점에 대한 합의가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협상타결 시 안정적인 교역투자 기반 확보 및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 재편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이므로, 우리기업도 이에 대응해야 한다.
자료 : 일본경제신문, JETRO, 국제무역투자연구원, KOTRA 오사카무역관 종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