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미칼리포트
스티로폼 오염 문제의 답, 애벌레에게서 찾는다
작성자 : 이용우
2017-10-17 |
조회 : 1082
<KISTI의 과학향기> 제3019호
“인류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SF영화 인터스텔라(Interstellar)에 등장하는 명대사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문제의 역사’라 할 만큼 문제투성이였지만, 그런 난관이 닥쳤을 때마다 인류는 언제나 해답을 찾으면서 오늘날까지 생존해 왔다.
현재의 인류가 당면한 심각한 문제로는 무엇이 있을까? 바로 환경오염이 아닐까? 특히 플라스틱 제품에 의한 오염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만큼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플라스틱류는 썩지도 않고, 종이나 쇠붙이처럼 재활용하기 쉽지도 않기 때문에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지구는 플라스틱 폐기물들로 뒤덮인 행성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는 또다시 답을 찾아냈다. 그것도 거창한 기술이나 설비의 힘이 아니라, 하찮은 미물(微物)이라 여겼던 곤충의 애벌레에게서 플라스틱 오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스티로폼 완전 분해 능력 가진 밀웜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로 구성된 공동 연구진은 플라스틱류 폐기물 들 중에서도 가장 처리하는데 애를 먹고 있는 스티로폼을 먹어치우는 애벌레를 연구하고 있다. 스티로폼을 먹는 애벌레의 명칭은 밀웜(mealworm)이다. 밀웜은 딱정벌레목 거저리과에 속하는 곤충인 갈색거저리의 애벌레다. 몸은 어두운 갈색이며 성충이 되면 길이가 약 15mm 정도로 자란다.
▲ 스티로폼을 먹고 있는 밀웜. 출처 : stanford.edu
밀웜이라는 이름대로 ‘식사’거리로 주로 활용되는 애벌레다. 도마뱀이나 고슴도치 같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친숙한 벌레일 것이다. 이 흔하디흔한 애벌레가 스티로폼을 먹어 치울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과학계는 이 애벌레가 가진 능력에 대해 적잖이 놀랐다.
곤충이나 새가 플라스틱을 갉아 먹거나 쪼아 먹는다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그리고 일부 미생물들이 플라스틱을 분해한다는 연구도 종종 발표되곤 했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이들의 플라스틱 분해는 물리적인 분해나 불완전한 화학적 분해였다. 커다란 플라스틱 조각을 미세한 형태의 분말로 만든다거나, 완전 분해가 아닌 일부만을 분해하고 나머지는 플라스틱 성분을 그대로 남기는 형태였던 것이다.
반면에 밀웜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제대로 분해되지 않는다는 스티로폼을 짧은 시간에, 그것도 원래의 스티로폼과는 완전히 다른 무해한 성분으로 분해하는 능력을 선보였다. 이전에 알려진 스티로폼 분해와는 차원이 다른 메커니즘이다.
스티로폼 분해 능력은 장내 박테리아로부터 나와
밀웜의 스티로폼 분해 능력의 비밀은 장내에 있는 박테리아다. 앞서 언급한 미국-중국 공동 연구진의 책임자인 스탠포드대 크레이그 크리들(Craig Criddle) 박사와 웨이민 우(Wei Min Wu) 박사의 설명이다. 이러한 사실은 항생제와 분해 능력 실험을 통해 밝혀졌다.
연구진은 다양한 항생제를 밀웜에게 먹이면서 변화를 관찰했다. 그 결과 항생제를 먹이면 스티로폼 분해 능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밀웜 내부에 있는 박테리아가 스티로폼 분해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암시하는 결과다. 우 박사는 “항생제로 인해 박테리아가 사멸하면서 애벌레는 더 이상 스티로폼을 분해할 수 없게 됐다”라며 “이번 실험을 통해 박테리아가 스티로폼 분해의 주역이라는 것을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항생제 실험에 이어진 분해 능력 실험에서도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연구진은 밀웜 100마리에게 한 달 동안 매일 34~39㎎의 스티로폼을 먹였고, 그 결과 밀웜은 스티로폼의 절반을 이산화탄소로 바꿔 배출했으며, 나머지는 대변으로 배설함을 관찰했다. 배설한 대변에 혹시라도 스티로폼의 환경오염 성분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연구진은 정밀 분석을 실시했다. 그러나 유해물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밀웜의 배설물이 작물 재배용 흙으로도 쓸 수 있을 만큼 안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크리들 박사는 “지금까지 생분해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온 스티로폼을 밀웜이 완전히 분해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라며, “특히 분해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는데, 스티로폼의 대부분이 24시간도 안돼서 이산화탄소와 배설물로 바뀌었다”라고 전했다.
밀웜의 가공할 스티로폼 분해 능력에 흥미를 느낀 연구진은 그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밀웜의 위장에 존재하는 박테리아들이 분비하는 효소가 스티로폼의 안정적인 결합구조를 파괴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존에는 플라스틱을 이루는 탄화수소의 결합력이 워낙 강해서 사실상 분해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 밀웜은 주로 애완동물의 먹이로 사용된다. 출처: grist.org
플라스틱 공해 해결의 신기원
밀웜이 스티로폼을 분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이번 발견은 가히 혁명적이라는 것이 학계의 의견이다. 만약 밀웜에 의한 스티로폼 분해 메커니즘을 완전히 규명한다면, 플라스틱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할 것으로 학계는 전망했다.
산업계의 관심도 크다. 특히 애벌레의 장내 박테리아가 가진 기전을 잘만 모방하면 스티로폼 분해용 인공 효소까지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크리들 교수는 “쓰레기 매립 공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스티로폼을 포함한 플라스틱 폐기물들이 해양에서까지도 오염문제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는 매우 중요하다”라며, “미국에서는 매년 3,300만 톤의 플라스틱이 폐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 : 김준래 칼럼니스트 / 일러스트 : 이명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