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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형산업 발전을 위해 금형인재 양성에 평생을 바치다.

작성자 : 이용우 2017-07-05 | 조회 : 2153

▲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금형기술그룹 이하성 교수님


우리나라 금형교육의 개척자이자 산증인…

 

1985년 유한전문대학교(현 유한대학교)에 금형설계학과를 신설한 이하성(1951년생) 교수. 우리나라의 금형교육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우리나라 금형교육사를 회고하면 많은 금형인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하성 전 유한대학교 교수다. 한국 금형교육의 개척자이자 산증인인 이하성 교수는 지난 2016년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은 생산기술연구원(인천) 금형기술그룹에서 금형교육관련 업무를 맡고 있으며, 한국금형공학회 명예회장으로써 학회 일을 돕고 있다.

 

우리나라 금형교육의 산실인 유한대학교 금형설계학과를 신설한 장본인이며, 금형산업의 브레인 집단인 한국금형학회 창설의 산파역을 했던 이하성 교수는 정년퇴직으로 금형인생의 한 장을 마무리했지만 여전히 현역인생을 살고 있다.

이하성 교수가 살아온 과거에는 우리 금형산업이 지나온 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그가 지금 새로 가고자 하는 길에는 우리 금형산업의 희망이 담겨 있다.

 

이하성의 금형인생 1막 : 성형공장 노동자에서 한국정밀기기센터 교수로

이하성 교수가 기계 산업과 첫 인연을 맺은 곳은 인하대학교 공과대학에서다. 1973년 이 학교 정밀기계공학과를 졸업한 이하성 교수는 군대를 다녀 온 후 성형품을 만드는 한 회사에 취직을 하면서 본격적인 금형 인생을 살게 됐다.

열악한 현실에도 묵묵히 자기 일을 하던 청년 이하성에게 어느 날 한국정밀기기센터(FIC)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다. 한국정밀기기센터는 UNESCO와 당시 상공부가 국내 최고의 특수 분야 전문기술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만든 기관이었다. 한국정밀기기센터는 1979년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로 개편되었고, 이하성 교수는 1980년까지 이곳에서 기술훈련부 교수로 재임했다.

이하성 교수가 정밀가공, 정밀측정, 치공구, 공정설계 등 본격적인 금형 수업을 받게 된 것도 이때였다. 운도 따랐는지 당시 불기 시작한 방위산업 육성 붐 덕분에 이하성 교수는 금형 수업에 더없이 좋은 기회를 맞게 됐다. 경남 양산에 있던 국방부 제조병창에 파견을 나가 교육을 받은 후 그 내용을 다시 방산업체에게 전파(교육)하는 일을 맡았던 것이다.

현장에서 배운 걸 다음 날이면 업체에 나가 가르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이하성 교수는 선진기술과 교수법까지 덤으로 익힐 수 있게 됐다.

여기까지가 이하성 교수의 금형 인생’ 1막이었다면 본격적인 2막은 1980년 유한공업전문대학(현 유한대학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시작된다.

 

이하성의 금형인생 2막 : 금형설계학과 신설과 한국금형공학회 탄생

80년대까지 우리 금형업계가 풀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전문 인력의 절대 부족문제였다. 당시 이하성 교수를 비롯한 몇 몇 교수들과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에서는 금형업계의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관계당국에 금형관련 학과 신설 등을 수차례 건의하고 있었다.

이러한 노력은 마침내 1985년 정부의 금형공업 육성방안이 확정되면서 빛을 보게 됐다. 이하성 교수의 주도로 유한공업전문대학에 금형설계학과가 생겼고, 부산공업대학(현 부경대학교), 천안공업전문대학(현 공주대학교 천안캠퍼스), 대유공업전문대학(현 동서울대학) 등에도 금형관련 학과가 신설된 것이다. 유한전문대학교에서 본격적으로 금형 교육자의 길을 걷던 이하성 교수는 2016년 정년퇴직 전까지 줄 곳 이 학교에서 후학들을 길러냈다.

대학 교육뿐 아니라 당시 금형산업 실태 조사에도 한 몫 했다. 1987년과 1989, 19913차례 금형조합의 의뢰를 받아 기본 실태조사를 주도했고, 이 자료들은 금형산업의 효율적인 육성방안 수립과 정부지원시책의 자료로 제공됐다.

이외에도 이하성 교수의 보이지 않는 공헌과 조력은 계속됐다.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은 금형산업의 경쟁력 관련자료 확보와 금형업계의 특성에 적합한 정책수립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무역위원회의 제안과제로 20045월부터 10월까지 6개월간 금형산업 경쟁력 조사를 실시했는데 이때에도 이하성 교수의 유한대학이 참여한 것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는 세계 금형산업 현황 및 기술동향과 미국, 독일, 일본, 중국의 금형 생산 및 수출입 실적, 주요 국가에 대한 경쟁력 분석자료 등을 수록해 금형업계에 보급함으로써 금형산업의 세계화 전략을 지원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하성 교수가 우리 금형산업에 끼친 공로는 비단 실태조사에 그치지 않는다. 금형산업의 KS규격을 정비하는 일에도 그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 있다. 1995년도부터 10여 년 동안 KS규격의 금형규격을 정비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이 때 이뤄진 작업이 다이세트 표준화 사업, 프레스 금형부품 표준화 사업 등으로 오늘날 우리 금형업계가 사용하는 KS 규격의 상당 부분이 이때 이하성 교수의 손을 거친 것들이다.

또한 오늘날 국내 금형산업의 브레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금형공학회 탄생의 실질적인 산파역을 맡았던 것도 이하성 교수다. 김학권 당시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 이사장, 기신정기() 윤종수 회장, 류제구 당시 서울산업대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 등 많은 금형인들의 후원과 지원을 받아 창립준비 위원장을 맡은 이하성 교수는 마침내 20064한국금형공학회(KSDME)’를 정식 출범시키고, 류제구 교수를 만장일치로 초대회장에 추대했다. 이하성 교수는 이후 200912월 한국금형공학회 정기총회에서 제2대 회장으로 선출된 데 이어 3대 회장까지 연임하고, 2015년도 허영무 박사(한국생산기술연구원)를 제4()한국금형공학회 회장으로 선임하기까지 학회 발전에 크게 기여해왔다.

 


이하성의 금형인생 3막 : 금형인재 양성을 위한 새로운 선택

2016년 유한대학교를 정년퇴직한 이하성 교수는 현재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금형기술그룹과 한국금형공학회 명예회장으로써 지금까지 평생 해오던 금형인재 양성관련 일을 지속하면서 금형인생 3막을 살고 있다.

한 평생을 금형인력 양성에 바쳐온 이하성 교수는 지금도 학회와 생기원, 금형조합(금형기술교육원)의 인력양성 프로그램에 도움을 주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틈틈이 금형업계의 과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생기원과 금형기업을 파트너 기업으로 협약을 맺어 공동 프로젝트 과제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금형업체들을 모아서 기술 커뮤니티를 만들고, 업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공동과제를 도출해내는 일도 진행하고 있다.

더불어 한국금형기술교육원과 함께 금형업체 경영자의 마인드 변화를 위한 교육을 준비하고 있다. 사장이 변해야 종사자가 변한다. 이를 위해 CEO과정을 대학의 교육과정과 같은 수준으로 실시한다는 계획아래 학회와 조합이 같이 노력하고 있다. 교육으로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외국 발주업체들의 CEO들을 외부 강사로 초빙, ‘CEO 국제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감으로써 해외시장 개척에도 도움이 되도록 해나가고자 한다.



머지않아 70세 고희를 앞두고 있는 이하성 교수는 人生을 다 바쳐 우리나라 금형산업 발전을 위하여 업계와 함께 호흡하며, 한국의 금형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켰다. 또 앞으로도 힘닿는 데까지 우리나라 금형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 노력해 나가는 금형인생 3을 살아갈 것이다.